라이프로그


모순과 전능성

동글동글 빙하님께서 질문주서셔 답변 드립니다.
어제 좀 바쁜 일이 생겨서 답변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일단 답변하기 이전에... 두 가지 사항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기독교 교의에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확실히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런 거 떠나서 삼위일체, 악의문제는 확실히 해결 안됩니다.
학계에서 전자는 보통 '하나님의 신비'로 처리하고
후자는 보통 '해결됨'으로 처리하긴 합니다만, 만족스러운 답변은 없습니다.
결국 지금 주신 질문에 대응이 된다고 해서 교리가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질문 싸이즈가 좀 많이 큽니다. ^^;
그래서 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건 배제하구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지만 잡아보겠습니다.
제 답변은 학계에서 널리 통용되지 않는 녀석이라 이걸 답변으로 하면 좀 무책임할듯 하네요.

자 그럼 시작.



1. 모순의 가능성

보통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고 이야기할 때 이는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에 대한 것으로 한정합니다.
'복권 사놓지도 않고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도 못 들어준다' 이런 비유를 자주 들죠.
사실 저 비유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논리적인 모순이 아니니까요.
보다 정확하게는 진짜 논리적인 모순을 예로 들어야 합니다.
가령 제가 대학생인 동시에 대학생이 아니게 만드는 일은 하나님도 하실 수 없겠죠.
신학자들은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라는 표현을 피합니다.
보통 '하나님은 모순에 대해 책임이 없다'라고 하지요.

여기에는 '논리학과 실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베이스로 하나 깔립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실제로도 불가능하느냐 이거죠.
일단 논리적으로 모순된 상태는 상상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상상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는 좀 이상한 면이 있지요.

아주 강한 회의주의적 입장을 채택하지 않는 이상
상상 불가능하면 형이상학적으로도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어떤 상태가 실재한다면 그 상태는 논리적으로 모순없음을 전제로 깔고 들어갑니다.
적어도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어야 우리가 그 상태를 놓고 대화를 할 수가 있지요.

이런 측면에서 신의 전능성을 논할 때 그 전능성의 범위는 '모순되지 않는 상태'로 대개 한정합니다.
결국 학자들은 '하나님이 모순될 수 있는 것을 행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2. '능력'이라는 개념

이건 신학이고 철학이고 잘 다루지는 않긴 한데 상식 수준의 논의라 문제 없는 범위에서 다룹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과 '능력의 실현'사이의 구분입니다.

저는 오늘 중으로 제 손을 머리 위로 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제가 손을 제 머리 위로 올릴 일은 없겠죠.
제가 오늘 하루 종일 제 손을 머리 위로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손을 머리 위로 올릴 능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에어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어컨 지금 꺼져있습니다.
에어컨이 지금 방을 시원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근거로
에어컨에게 방을 시원하게 만들 능력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죠.

누군가 어떤 일을 실제로 실행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해당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실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르게 말해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은 비교적 쉽지만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은 비교적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아직까지 능력을 실현하지 않은 것인지,
실제로 능력이 없어서 실현을 못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부분을 다룰 때 '의지'가 들어가 주어야 합니다.
제가 손을 제 머리 위로 올리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저는 진짜로 능력이 없는 거겠죠.
에어컨으로 방을 시원하게 만들 수 없다면 에어컨은 방을 시원하게 만들 능력이 없겠죠.
(물론, 이 경우에는 약간 복잡한 문제가 개입됩니다.
기계는 실제로 능력을 가졌는데 인간이 작동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있죠. 일단 이런 건 패쓰.)

여튼. '능력'과 '능력의 실현'이 다르다는 점만 기억해 놓으시면 충분합니다.



3. 전능자는 전능자를 만들 수 있는가?

이것도 이런 질문을 다루는 신학자가 없어서 ㅋ
그냥 일반적인 철학문제만 짚고 넘기겠습니다.

일단 전능자가 전능자를 만드는 것이 모순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른 전능자를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이걸 전능성의 반대근거로 삼을 수는 없죠.
하나님이 '나 다른 전능자 만들기 싫은데?'이러실 수도 있으니.
이런 문제를 제한다 치더라도 전능자가 둘 이상인 경우는 복잡한 문제를 갖습니다.

전능자 A와 전능자 B의 의지가 모순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가령 A는 비를 내리게 하고 싶은데 B는 비를 내리게 하고싶지 않습니다.
반약 비가 내린다면 B는 전능자가 아닙니다.
비가 안 내린다면 A는 전능자가 아니죠.
그러므로 전능자가 둘 이상인 것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양자의 의지 혹은 하고싶어하는 일이 서로 모순(혹은 반대)될 수는 없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모순을 형이상학적으로 용납해야하는데
그건 제일 처음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전능자 A와 전능자B의 의지가 모순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그런 두 전능자를 상정할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의지가 모순되지 않는 전능자가 두 명 있는 게 가능하다면
백만 명 정도 있어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 그런 전능자가 한 명이건 두 명이건 백만 명이건 별 상관 없는 거 아닌가요?

이러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이 상황에서 '한 전능자는 다른 전능자가 하려는 것과 모순된 것을 할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거 확정적이지 않습니다. 좀 검토는 해봐야겠는데 제 능력으로는 어렵네요.
일단 공격적으로는 'A의 뜻에 모순되는 일을 B는 못하잖아?' 이렇게 볼 수 있고
방어적인 관점으로는 '전제 자체가 A,B의 뜻이 모순되지 않는 것인데 전제를 무시한거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일단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은 사실입니다.


둘째로. 좀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전능자가 여럿인 경우 우리는 전능자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게 실제로 두 전능자가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의 전능자를 두 가지 다른 지시어로 지시하는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주제는 철학적으로는 뻔히 받아들여지는데 일반적으로는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좀 많이 쓸데 없는 상상이 필요하거든요.

가령 저는 지금 키보드로 타자를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키보드가 하나라는 것을 압니다. 제 눈으로 봐서 한개밖에 없잖아요.
손으로 만져도 하나밖에 없고.

그런데 이게 사실은 키보드가 한 개가 아니라, 실제로는 키보드가 두 개 이상 있는데
누가 제 감각기관을 조작해서 두 키보드가 하나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어렵습니다. 잘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핵심 포인트는 이겁니다.
1. 내 눈에는 이거 한개다.
2. 그런데 실제로는 두개다.
3. 실제로는 두 개인데 내 눈에 한 개로 보이는 이유는 내 감각기관이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3.은 필요없는데 상상에 도움되라고 넣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내 눈에 하나밖에 안 보이는 이 키보드가 실제로는 두개이며 내가 속아있는 상황을
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내 눈에 키보드는 하나밖에 없죠. 이게 두 개인지 한 개인지 어떻게 알아요.
키보드가 두 개 있는 상황은 내 상상 속에 있는 거죠.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상은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두 키보드를 각각 'A키보드', 'B키보드'라는
서로 다른 낱말로 지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지시할 수 없다면 이거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이 상황은 우리가 지시하는 낱말을 두 개 로 구분했을 뿐이지 형이상학적으로는
다시 말해 '실재'라는 측면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의미가 없다는 입장과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 있음.)

사실 위 경우가 이 철학적 문제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지가 모순되지 않는 전능자가 여럿인 상황에서는
전능자 A, B, C, D가 갖는 의지가 다른다는 것을 근거로
개별 전능자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게 한 전능자가 행한 행동을 우리가 임의대로 구분해서 여러 전능자로 간주한 것인지
실제로 여러 전능자가 행한 행동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거든요.

결국 전능자가 여럿인 상황을 상정하려면 각 개별 전능자를 구분할 방법이 필요한데
이 방법을 만드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여튼. 포인트만 정리하면.
1. 모순된 의지를 갖는 두 전능자가 있는 상황은 논리적으로 불가능.
2. 모순되지 않은 의지를 갖는 두 전능자가 있는 상황은 불가능하거나 의미가 없음.
(2번의 경우 논란의 여지는 있음)

사족으로. 개인적으로는 2번같은 문제는 '그런 것은 문제의 일종이 아니다'라고 하고 넘어갑니다.



4. 전능성에 관한 흔한 오해

전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단하게 추가합니다.
인터넷에 보면 '전지성과 전능성은 모순이다' 혹은 '전능성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라는 설이 있는데
이거 오류입니다. 추론 형식상 오류입니다. -_-;;

하나만 해도 둘 다 깨지니까 하나만 하면.
'신은 자기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없다'를 보죠.
이거 그냥 문장을 잘못 쓴거예요.
자세히 나눠보면

1. 신은 전능하다.
2. 신은 자기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다. (1.에 의해)
3. 신이 자기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든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2.에 의해)
4. 신은 전능하지 않다. (2, 3.에 의해)
결론) '신은 전능하다'라는 명제에서 '신은 전능하지 않다'라는 명제가 도출되므로,
전능성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렇게 되는데.......... 이거 그냥 오류입니다.

오류의 핵심은 '상태변화'입니다.

'신이 그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돌X라고 칩시다.
신이 돌X를 만들기 전 까지 신은 전능합니다.
다르게 말해, 돌 X를 만들기 전 까지 신은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신이 돌X를 만듭니다. 그러면 이제 신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돌X를 드는 것은 할 수 없죠.
그럼 이제 신은 전능해지지 않은 것이죠.
여기서 굳이 '신'이라고 쓸 필요도 없어요 그냥 '주체A'로 처리해도 됩니다.

즉, 돌X가 있기 전에는 전능성이 유지되지만 돌X가 생긴 이후로 전능성이 깨집니다.
그렇기에 해당 문장이 정확하게 주장하는 바는
'전능자는 자신을 전능하지 못하게 만들 수 없다'가 됩니다.
그런데 전능자가 자신을 전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논리적으로 무슨 오류예요.
본인이 전능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 둘 수 있죠.
에어컨이 방을 차갑게 만들 능력이 있지만
에어컨에서 냉매를 빼면 그 능력 잃어버리는 거랑 똑같습니다.

좀 더 현대적인 툴을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능세계A는 돌X가 없는 세상입니다. 이 세계에서 신은 전능하죠.
가능세계B는 돌X가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세계에서 신은 전능하지 않죠.
서로 다른 세계에서 신의 전능성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모순이 아닙니다.
결국 저 주장은 돌X의 존재로 일어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겁니다.


신학적으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의 전지성과 자유의지 사이의 대립이지
전능성은 심각하게 문제되는 거 없습니다. 참고하시면 좋고...


마무리로. 이런 문제는 신앙의 핵심과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호기심이 있이서 이런 문제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호기심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을 신앙과 연결지으면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다루실 때에는 꼭 이 질문이 신앙에서 갖는 의미도 함께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만하면 할 이야기 다 한듯.
어려운 이야기들은 좀 빼셔도 되겠군요^^; 쓸만한 것만 뽑아가셔도 충분하겠습니다.

진심 웃기네.

최저임금제 찬/반과는 별개로.
나는 EITC가 퇴출대상이 되는 한계기업의 존속에 이용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제약하기 위한 수단으로 최저임금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거 뭐야. 학자들은 이미 다 논의하고 있던거잖아.
근데 이글루스에서 이 부분을 강조하는 포스트는 못 봤단 말이지.

ㅇㅋ. 내가 못 봤을 수는 있어.
근데 최저임금제라면 거품물고 극딜하는 수 많은 포스트들을 놓고
'니가 못 본거임 ㅋ' 이러면 개념이 없는 거지.

솔까 관련분야에서는 맨큐만 읽은 내가 혼자 생각으로
학계에서 이미 나온 이야기를 건져낸 게 두 건이라면
이거 좀 심각하게 문제있는 듯.

진심 이 동네 위험하다.

개인적으로 이글루스가 쇠락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

생각해보니. 기독교가지고 시비거는 사람 못 본지 꽤 오래됨 (.....)
유입이 있으면 분명히 이거 가지고 뭐라하는 사람 또 생겨날텐데 진짜 못봤음.

습도. 그것이 문제로다.

향초로 습기제거


디스커스님 포스트에서 트랙백합니다.
디스커스님은 대강 알고 계신 것 같지만 참고할 만한 몇몇 사항을 적습니다.

'습도가 높다' 또는 '습하다'라는 말은 과학에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고등 물리책에서 다 배웠습니다.)
(찾아보니 기상 쪽 관점까지 해서 세 가지가 있네요. 일단은 패쓰.)
첫째는 상대습도이고 둘째는 절대습도입니다.

기본적으로 '습하다'라는 말은 '공기중에 습기가 많다'라는 뜻인데
이 '공기중에 습기가 많다'라는 말의 뜻이 애매합니다.
그래서 과학에서는 이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정확한 설명은 다소 복잡하니 약간 부정확하지만 직관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두 그릇의 물이 있습니다.
왼쪽 그릇의 물은 미지근합니다.
오른쪽 그릇에는 얼음이 물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그릇에 있는 물의 온도를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방식. 왼쪽 그릇의 물은 오른쪽 그릇의 물보다 뜨겁습니다.
이는 왼쪽 물의 온도를 오른쪽 물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만약 오른쪽 물을 끓여서 뜨겁게 만든다면 왼쪽 그릇은 오른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가워 지겠죠.

두 번째 방식. 왼쪽 그릇의 물은 (섭씨) 25도이고 오른쪽 그릇의 물은 0도 입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온도체계를 이용하여 절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른쪽 물을 끓이건 말건 왼쪽 그릇의 물은 여전히 25도 입니다.

'습하다'라는 말도 위와 같이 상대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알기 쉬운 것은 '절대습도'입니다. 수증기는 사실 물이죠?
방 안에 떠다니는 수증기의 무게를 재면 절대습도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단위부피를 기준으로 잽니다. 이 부분은 생략)
이 절대습도는 방 안의 온도와 관계 없이 일정합니다.
난방을 한다고 해서 수증기가 어디 도망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난방을 하면 건조해집니다. 이는 상대습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똑같은 방에서 수증기 양이 똑같을 때, 다르게 말해 절대습도가 똑같을 때에도
방 안의 온도가 높으면 상대습도가 낮아집니다.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상대습도가 올라갑니다.

그래서 습도를 낮추는 방법은 두 가지가 됩니다.
첫째는 난방입니다. 난방은 상대습도를 낮추어서 방을 건조하게 만듭니다.
둘째는 에어컨을 통한 냉방입니다.
에어컨을 켜면 공기 중의 습기가 물로 바뀌어서 에어컨 배출구로 나가게 됩니다.
결국 절대습도가 낮아져서 건조하게 됩니다.
참고로 제습기는 에어컨과 동일한 원리로 습기를 제거합니다.


이 시점에서 '향초'를 생각해 보면...
향초가 습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실내온도를 높여서 상대습도를 낮추는 방법 뿐입니다. -_-;
그런데 우리가 여름에 습도를 낮추는 이유는 덥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똑같이 더워도 습도가 높으면 더 덥게 느껴지니까요.
시원하게 만들고 싶은데 온도를 높이면 의미가 없죠.

그러니 더우면 그냥 에어컨 틉시다. 현대문명 만만세!

PS : 플라시보효과 정도는 노릴 수 있겠습니다.
가령 더워서 불쾌한데 향기 때문에 불쾌감을 줄여준다거나 이런 식으로요.
플라시보효과를 실제로 이용할 상황이 있으면 쓸 수 있겠지만 에어컨 있으면 에어컨 틉시다.
그러니까 에어컨 좀 팍팍 틀게 원전 좀 많이 때려박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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