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리플에 대한 해명

음.. http://plinchoi.egloos.com/4534595 에서는 '놈놈놈'이라는 영화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비평이 개인을 넘어선 영역에서 상당히 폭력적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나의 평소 생각에 비추어 보아 '폭력적'이라는 말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으나, 방금전에 사용한 '폭력적'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의미와 같다. 즉, 위 글은 '부당한'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방금의 그 문장은 정당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실 '정당한'건 아니다. 그냥 현실을 인정한다는 의미이지. 더 묻지말아주세요 ㅠ.ㅠ... 제대로 설명할 능력도 없소오오. 궁금하다면 '합리성의 경계'라는 곳에 적힌 조잡한 글들을 보시오. -ㅅ-.....)
평소에 하던대로 심히 까칠한 리플을 달았는데, '레시오니아'라는 분께서 감사하게도 그 리플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셔서 추가적인 설명을 한다. 혹시나 해서 위에 링크된 글과 내가 달아놓은 리플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이 글을 쓰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페이지가 깨져서 나오기에 기억에 의존해서 쓴다.

기본적으로 내가 그 글에서 느낀 불쾌함은 '해석'과 '진리'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 글이 '놈놈놈'에 대한 어떤 평론가의 평을 주로 소개하고, 마지막에 '놈놈놈'에 대한 블로그 주인의 평가가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한 내 기억이 맞다면, 그 평론가는 '과연 정치와의 관련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영화가 있는가?'와 비슷한 종류의 발언을 했다. '해석'과 '진리'의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저 평론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이다. 최대한 양보하더라도, '아직은 알 수 없다.'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매우 간단하게 답을 내렸지만 사실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나 또한 '완전히 자유로운 영화가 없다'고 전제하고 '놈놈놈'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시작하는 평론가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나와 그 평론가의 차이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진리기준에 따라 그 문제에 대해 간단하게 답을 내렸고, 내가 생각하는 진리기준에 따라 내가 선언한 명제의 참/거짓을 재검토하지만, 그 평론가가 사용하는 진리기준에는 이러한 자기-검증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강하게 나가보자. 나는 '폭력'이 진리의 핵심 요소라고 '믿는'다. 내 믿음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매우 자주 드는 예시이다) 나는 지금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어떠한 사람이건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긁적은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어느 정신분열증 환자를 데려와보자. 그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긁적 너 왜 귀여운 다람쥐를 괴롭히는거야!!!' 우리는 그 정신병자에게 사실을 알려줄 수 없다. 단지 우리가 가진 힘으로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우리의 진리를 그에게 강요할 수 있을 뿐이다. 요약하자면, 어떠한 것이 객관적이라고 해도 그것의 객관적인 특징이 우리의 주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만일 객관이 주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정신분열증 환자가 잘못된 감각지각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지금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 혹은 진리*1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혹은 비정상으로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제 기본적인 재귀적 검사 즉, 위의 규칙을 위의 규칙에 따라 검증하는 일이 남았다. 위의 규칙을 간단히 요약하면 '진리는 폭력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진리는 폭력이다.'라는 말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로 선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많은 근거를 나의 안에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믿는'다. 라고 이야기한다. 별 수 없이, 나는 내가 제시하는 모든 근거를 이해하고도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라고 선언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최근에 철학적으로 상당히 널리 쓰이는 '가상세계'라는 방법을 통해 이 말을 약간은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 방법은 '5. 부록-필연적인것은 사실의 일종인가 및 3개 주제에 대해'라는 포스팅의 메인 주제에 대강(...이봐.; 정성은 좀 들이지?) 기술해 놓았다. 이 포스팅의 주장이 옳으며 '진리는 폭력이다.' 아니면 '진리는 반드시 폭력성을 띈다.'라는 주장이 인간의 사고를 표현했다면, 우리는 폭력성을 띄지 않는 진리가 존재하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폭력성을 띄지 않는 진리가 존재하는 세계란, 내가 다람쥐를 괴롭힌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정신병원에 넣을 수 없는 세계에 비유될 수 있다.

뭐 어찌되었든, 내가 설정한 진리규칙은 기본적으로 검증불가능하다. 그 규칙이 검증가능하다면, 그 규칙은 결코 재귀적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며, 이는 명백하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설명하기 힘들어서라고는 죽어도 말 못한다 -ㅅ-... 여튼 스스로 GG찍었다는점에 주목. 죽어야 사는 아이디어다 -ㅅ-.... 스스로 GG찍는다는게 새로운 아이디어도 아니다. 내가 아는 한, 파스칼은 400년쯤 전에 '팡세'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의 지적이 적용된다. 다만, 나는 파스칼이 문제삼았던 그런 간단한 회의주의를 채택하지는 않는다. 내가 더 막장이다 우하하.-_-......)

이로서 나는 최소한 내가 사용하는 진리의 기준이 그 평론가가 사용하는 기준보다 우월한 이유와 '과연 정치와의 관련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영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면서도 그 답에 대해 완전히 자신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론가의 글에서는 이러한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그러한 종류의 해석이 가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는 심대한 관심을 보이나, 그러한 종류의 해석이 가질 수 있는 무가치함에 대해서는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러셀과 같은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느껴진다. (러셀의 믿음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을 참조)

지금까지 그 포스팅에대해 내가 까칠한 리플을 단 이유를 설명했으니, 이제 레시오니아님의 지적, 혹은 요청에 답할 차례가 되었다.레시오니아님의 글은 방명록에 달린 리플에 있다.

내가 요약하기로 이 리플은 나와 평론을 소개한 포스팅의 필자(joplin)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그 유사성은 두 가지 측면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나와 joplin님 모두 이론보다 능동적인 사고를 강조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단정적인 해석에 대해 경계했듯, joplin님 역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실 두 지적은 모두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적은 모두 옳지 '않아야한다'. 이 '않아야 한다'라는 말은 위에서 진리와 폭력의 관계에 대해 지적한 바로 그 의미대로이다.

일단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부터 답하겠다. 지적대로 joplin님은 능동적인 사고를 강조했으나, 그 능동적인 사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표명하지 않으셨다. 솔직히 나는 joplin님의 글에서 소개한 평론가에게 너무 실망해서 글의 후반부를 약간 대충 읽었다. 그래서 정말로 joplin님께서 자신의 글 내용에서 '능동적인 사고'를 전개하셨는지, 그렇지 않으셨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분께서 마지막 부분에 쓰신 말들로 추청해 볼 때, 내가 이야기하는 의미의 '능동적 사고'를 전개하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joplin님의 '능동적인 사고'라는 개념은 '다른 학자들의 말을 수입해서 자신의 생각으로 표현하는 행위'와의 대비를 통해 표현된다. 즉 타인의 힘을 빌리지 말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의 능동적인 사고는 그 자체로 능동적인 사고를 가로막는다. 요점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있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생각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우리는 진리 안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다른 학자의 말을 수입해 보자.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논고'머릿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도 사실 맨날 인용하는거다.; 시오노 나나미의 빈정거림을 빌린다면, '어쩌다 하나를 배운 바보가 자랑스럽게 그 배운것만 반복하듯'말이다.) '생각에 한계를 그으려면 우리는 이 한계의 양 측면을 다 생각할 수 있어야 - 따라서 우리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 말을 간단하게 풀이하자면, 우리는 생각의 한계를 그을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긋는'효과를 내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거까지는 생략) 한계를 그으려면 한계의 안과 밖을 다 보아야 한다는 것은 꽤 당연한 말이다. 가령 바다를 생각해 보자. 망망대해 가운데에서는 바다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 한계는 바다의 안과 밖을 모두 볼 수 있는 곳. 해안선에서만 드러난다. 만주벌판 한 가운데에서 땅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바다를 생각으로 바꾸어보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것들 안에서만 논다면, 도대체 '생각'이라는게 무엇인지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생각'의 끝을 알려면 '생각될 수 없는 것'을 보아야 하는데, '생각될 수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생각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어떠한 진리 가운데에 있을 때에도 그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 하나의 진리가 섰을 때, 우리는 그 진리를 바라보고자 하고 그 진리를 수호하고자 한다. 그 진리에서 어긋나는 것들은 모두 '틀린'것이며, 그 진리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이성이 없는 자' 혹은 '정신병자'이다. 복수의 진리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복수의 진리를 인정하는 사람은 그 복수의 진리가 모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할 것이다. 모순되는 복수의 진리를 '관점의 차이'라고 해버리는 사람은, 그 '관점의 차이'라는 상대적인 관점을 진리로 삼는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하나의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바보로 취급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joplin님의 '능동적 사고'와 내가 이야기하는 '능동적 사고'는 다르다. 내 관점에서 joplin님의 '능동적 사고'라는 말은 '너의 두 발로 땅을 디뎌라'라는 말에 비유될 수 있겠다. 내 관점에서의 '능동적 사고'는 '니가 가진 모든 것으로 너의 땅을 부수어라'라는 말로 비유될 수 있겠다. '않아야 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적용된다. 내가 나의 사고와 joplin님의 사고를 이렇게 대조하는 순간, 양자를 해석할 새로운 방법, 새로운 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설명들이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여기까지 명확하게 보았다면, 단정적인 결론에 대한 문제도 쉽게 표현할 수 있다. 간단하다. 내 관점에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른 해석이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행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다른 해석 자체를 직접 보는 행동이 중요하다. 내 기억대로라면, joplin님이 자신의 해석체계에 쏟은 관심의 크기와 다른 해석체계에 쏟은 관심의 크기는 다르다. 여기에서 '다른'해석체계란, joplin님과 완전히 다른 관심사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체계를 뜻한다. 결코 'joplin님의 지적은 훌륭한데, 이러이러한 점에서는 제 생각과 다릅니다.'와 같은 사람이 제시하는 해석체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부분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과 원칙들을 지키다간 정신병자가 될 것이다. 위의 주장들을 약간 뒤틀면, 앎은 곧 믿음이고, 믿음이 없는 인간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글에서 나는 계속 그 믿음을 파괴하라고 이야기한다. 정말로 계속해서 파괴할 경우,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처럼 이 글은 매우 극단적인 시각으로 쓰여졌고, 그래서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그 리플에 대한 해명으로는 매우 충분한 듯하다. 무엇보다 레시오니아님과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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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긁적 | 2008/08/08 00:10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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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시오니아 at 2008/08/08 00:44
장문 잘 읽었습니다. 덧글로 달고 싶었던 내용의 경우, 긁적님께서 이미 본문에 고백조로 적어두신 바, 충분히 생략될 수 있는 내용이군요. :') ㅎ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08 01:20
레시오니아 // 흠.. 그 내용이 제 추측과 같다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joplin at 2008/08/09 19:26
안녕하세요? 스킨을 바꾸는 도중에 문제가 생겨서 며칠 못들어왔습니다. 핑백이 달려 있길래 와봤습니다. 그 날도 들어왔었는데 그땐 글쓰시기 전이었군요.

글의 앞부분만 봐도 뭐가 문젠지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긁적님과 제가 철학적 바탕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맑스주의 연구자입니다.(제임슨도 알튀셰를 잇는 맑스주의자입니다.) 이말 한마디면 님께서도 뭐가 문제였는지 대충 아시겠지요. 진리에 대한 전제와 관심 자체가 다릅니다. 맑스주의자들이 영미의 분석철학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영미철학을 잘 모르기도 하구요. 어떤 말이든 해야한다면, 그건 영미철학과 맑스주의 사이의 아주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다툼이 될 듯한데, 저는 그런 이야기가 제 글에서 너무 나아간 얘기이고, 조금 새삼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제임슨이 국내 철학계에선 듣보잡인지는 몰라도, 그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것이 '모든 것은 정치와 관계되어 있다.'라는 단순한 주장은 아닙니다. 제임슨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헤겔의 변증법과 정통/수정된 맑스주의, 프로이트와 라캉의 세계관을 섬세하게 알아야 하는데, 어떤가요? 영미철학과 그 관심사가 너무도 다른 것들 아닌가요?

제글 마지막에 쓴 문장은 사실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쓴 말이랍니다. 이전 포스트, '빠삐놈 시대의 서태지'라는 글에 댓글 단 어떤 사람입니다. 그 분은 철학적 용어와 그 일상적 용법을 구분하지 못하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쓴 용어들에 레퍼런스가 없는 것은 아닌데. 게다가 제 글 자체가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거의 감상에 불과한 글이었다는 것도 우습죠.
책만 열심히 읽었지, 그게 일상적 삶이나 행위에 적용되면 어떤 모습일런지 전혀 고민을 안하는 분이더군요. 비슷한 용어만 눈에 띄면 모두 이론으로 소급시키고 환원해 버리는 태도는 분명 현실감각이 없는 탓이라고 봅니다. 그 분은 이 '현실감각'이라는 말도 매우 교과서적으로 해석하시던데.

아무튼 제글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고칩니다. "진리'가 아니라 '진정성'이라구요.

결국 제3자 욕만 구구절절 쓰고 가네요.
제 글에 답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문에 발전이 있기를 빕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09 20:25
joplin // 와 주셨네요 ^^; 초큼 불쾌할 수 있는 리플을 남겨서 미안합니다. 그게 제 원래 스타일이고, 일종의 목표 -_-... 인지라.;
여튼 관심사가 다르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영미철학계통 내에서도 막장-_-스러운 주장을 하는지라,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가령 의지를 인식의 기본 원리로 도입하는것을 예로 들 수있겠군요. 사실 제 생각의 출발점은 영미철학하고 관련이 없습니다. 끝부분이 관련이 있지.;

뭐 여튼간에. 제 관점에서 - 주류 영미철학의 관점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 헤겔, 맑스, 프로이트, 라캉과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유의미하되 사실의 일종은 아닙니다. 역시 지적하신대로, 이 지점부터 논의를 시작해 나가면 2박 3일을 해도 끝이 날 수 없겠지요. 사실 2박 3일을 해도 끝이 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제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ㅋㅋㅋ

마지막에 말씀하신 그 친구는 정말 불쌍하군요. 저도 수업시간에 그런친구를 만나서 꽤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답이 없더라구요.;

여튼 앞으로도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좀 더 재미있는 자리에서 만나뵙기를 빕니다. ^^
Commented by 하늘선물 at 2008/08/14 00:46
뭡니까. 불쌍하다니, 싸우자는 겁니까? ^^

사실 뭐 그렇습니다. 원래 제 스타일이 아닌 덧글을 단 이유가 오히려 현실감각이 없는 분 같아서 비슷한 식으로 공격들어간것을 엉뚱하게 공격당해서 울고 있었습니다. ㅜ.ㅜ

저 역시 맑스 원전을 읽으면서 수많은 감동을 느끼고, 나름 좌파는 실질적인 행동과 밀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이며, 문화현상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밑도 끝도 없는 '철학적 단어'를 사용하는 인간을 경멸하는 자인데, 그 빠삐놈 같은 웃기지도 않는 글들을 보고 있으니 짜증나서 비슷한 방식으로 공격한것이 상대방에게 안먹혔나 봅니다.

윗 덧글도 같은 현상이 보이는데,

'제임슨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헤겔의 변증법과 정통/수정된 맑스주의, 프로이트와 라캉의 세계관을 섬세하게 알아야 하는데' 라는 말입니다. 뭡니까? '~~한 세계관 을 이해할려면, ~~~를 알아야 합니다.'따위에 말은 아무런 답이 안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제임슨 모르면 닥치삼 하고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 빠삐놈 어쩌구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고....하도 답답해서 이양반이 정말 제대로 철학을 알고 있다면 내가 몇가지 끄집어낸 불필요한 용어를 제대로 지적할거라 믿었지만, 무답하더군요. 소칼식 지적사기를 제대로 쳤어야 했는데.....

뭐 그렇다는 건데, 불쌍하다니...이양반이 날 알면서 싸우자는 겁니까? ^^;;;;;; 정 그렇다면 님이 말하는 굇수스타일 논리실증주의식으로 덤빕니다..^^;

아무튼 심심해서 놀러왔다가 재미있는 덧글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14 01:22
하하. 이렇게 엮이는군요. 아... 말 한마디 하는게 어렵다는걸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일단 '확인철저'라는 말을 백만번정도 외쳐야겠군요.

위의 리플에서 joplin님이 이야기한 사람이 하늘선물님인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또한 해당 포스팅은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제가 아는 하늘선물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해, 제가 수업시간에 만난 부류와는 다릅니다.)

다만, '~~한 세계관 을 이해할려면, ~~~를 알아야 합니다.' 라는 말에 저는 일부분 동감을 합니다.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경우, 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joplin님도 그와 같은 의도로 글을 쓰신 듯하군요. 또한 '~모르면 닥치삼'이라는 말은 '당신이 ~를 모르니까 당신은 나와 논의할 수준이 못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joplin님과 저의 경우에는 수준이 다르다는 뜻으로 이해되지 않고, '분야가 달라서 논의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혹은 '관심사가 다르다'로도 이해할 수 있겠군요. 나아가, 저는 '두 관심사, 두 분야 중 어느 것이 옳은지 가릴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주제는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예 대화가 불가능할정도의 전문적 이야기인가?'라는 문제가 추가로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만, 패스하겠습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엠티가야되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ㅠ.ㅠ)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불쾌한 리플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확인철저'를 이유로 까신다면 뭐 닥치고 까여야겠지만, '무지'와 '반성'을 핑계삼아 너그러이 용서하셨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慕華 at 2008/08/10 00:04
이로서 나는 최소한 내가 사용하는 진리의 기준이 그 평론가가 사용하는 기준보다 우월한 이유와 '과연 정치와의 관련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영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면서도 그 답에 대해 완전히 자신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논지를 전개하고 나니,난 두 가지 확신이 들었다. 하나는 내 생각에는 내가 진리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판단내릴 때 쓰는 기준이 저 평론가가 쓰는 그것보다는 올바르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제작자의 정치적 신념에서 자유로운 영화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내 나름대로의 명쾌한 답을 내렸다는 점이다. 물론 이 두 가지 확신은 절대적이지 않다. 얼마든지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론가의 글에서는 이러한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그러한 종류의 해석이 가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는 심대한 관심을 보이나, 그러한 종류의 해석이 가질 수 있는 무가치함에 대해서는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러셀과 같은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비판하려는 저 평론가는 나와는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그의 글에서는 평론가의 글쓰기의 미덕인 "지적인 주저함" 곧 "나의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 뿐인가? 내가 보기에는 꼭 옛날 영국의 철학자 러셀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주장을 맹신한다. 그의 논조가 반드시 다 가치있는 주장도 아니고 무가치한 생각들도 많이 있어보이는데 말이다.

이렇게 고쳤으면 정말 쉽게 이해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10 00:31
慕華 // 아쉽게도 두 가지 수정은 모두 원문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의 핵심은 모순율을 어기는 '듯한'형식이고, 두 번째 단락의 핵심은 주장의 옳고 그름, 틀릴 수 있는 여지가 아니라 관심사입니다.
첫 번째 단락의 핵심 키워드는 '저의 상태'이고, 두 번째 단락의 핵심키워드는 '평론가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군요. 두 단락 모두 '일관성'이라는 규칙을 상당히 무시하고 썼기에 헷갈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상당히 당연합니다. 다만 위의 키워드를 기준으로 하면 조금 일관적으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
길고 골치아픈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慕華 at 2008/08/10 00:48
길고 골치아프게 썻으니 원문의 의미는 이미 훼손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전 알기 쉽게 고친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 긁적님의 답변글 자체가 무슨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하는지 제가 파악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혹시..아도르노 좋아하세요? 님의 글투가 어디서 많이 본 글투입니다.^^

첫 번째 단락의 핵심은 모순율을 어기는 '듯한'형식...----> 첫 번째 단락의 핵심 키워드는 '저의 상태'이고

두 번째 단락의 핵심은 주장의 옳고 그름, 틀릴 수 있는 여지가 아니라 관심사---->두 번째 단락의 핵심키워드는 '평론가의 상태'라고

두개의 단락에는 그럼 이미 두개의 의미가 즉 네개의 의미가 중첩되어 있군요.--;;;; 그럼 애시당초 처음부터 그렇게 단락을 내게로 나누어서 설명하셨어야죠. 맞죠? 님 혼자 읽을려고 쓴 글 아니잖아요.
Commented by 慕華 at 2008/08/10 00:50
그리고 제 글이 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님의 글은 이미 문장규칙에서 봐도 주부와 술부의 명확한 대거리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慕華 at 2008/08/10 00:40
우리가 어떠한 진리 가운데에 있을 때에도 그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 하나의 진리가 섰을 때, 우리는 그 진리를 바라보고자 하고 그 진리를 수호하고자 한다. 그 진리에서 어긋나는 것들은 모두 '틀린'것이며, 그 진리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이성이 없는 자' 혹은 '정신병자'이다. 복수의 진리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복수의 진리를 인정하는 사람은 그 복수의 진리가 모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할 것이다. 모순되는 복수의 진리를 '관점의 차이'라고 해버리는 사람은, 그 '관점의 차이'라는 상대적인 관점을 진리로 삼는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하나의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바보로 취급할 것이다.---->

만일 내가 어떤 사실이나 나만의 어떤 생각을 "진리"라고 확신한다고 가정해보자.(물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제껴놓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언어의 폭력성 중 하나인 "자기한정성"을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A는B다 라고 정의했다고 하자 그럼 그 A는 B외에 다른 술어명제인 C D E F.....로 등치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A가 C D E F....이라고 주장하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진리주장"을 모두 거짓이라고 판단하게 되고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즉 나의 말로 표현된 진술대상 A는 내가 입으로 한 말 "A는 B다"라는 명제때문에 강제적으로 C D E F같은 여러 가능성과도 결별하게 된다. 이런 것을 언어의 자기한정성이라고 하며 이런 자기한정성이 언어대상의 가능성을 강제로 없애고 옥죄는 기능이 있어서 "언어는 폭력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확신과 진리논쟁에 이런 언어적 폭력성이 덧대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 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거짓말장이나 이방인 낯선사람 정신병자들"로 취급하기 쉽다. 결사적으로 귀를 막고 나의 생각을 위의 "거짓말장이 이방인 낯선사람 정신병자들"에게 강요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항에 관한 진리란 단 하나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한한 이야기이다. 만일 하나 이상의 진리 즉 두개또는 그 이상의 진리가 어떤 사항속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바로 위에서 말한 "진리에서 이탈한 거짓말장이 정신병자"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여러가지 진리들"을 세우고, 그 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고 들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진리의 단일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병리현상에서 이들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상대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처럼 하나의 사항에 대해서 두개 이상의 모순된 명제를 우리는 제기할 수 있고 그 모순은 사람마다의 사물을 보는 관점의 차이(diffrence)일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그런 관점의 차이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확신도 "진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을 가진 상대주의적 인간은 앞에서 말한 두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할 것이다. 왜냐하면 첫번째 부류는 독선적이고 두번째 부류는 덜 독선적이되 여전히 한가지 한가지 명제에는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수긍해야 할 타당성이 있는 진리명제가 "일대일대응"한다고 이런 류의 사람들은 굳게 믿기 때문이다.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쪽이 더 낫지 않을지...--;;;
Commented by 慕華 at 2008/08/10 00:56
솔직히 님의 글투를 보니, 테오도르 아도르노를 되게 좋아하시는 분 같군요. 이미 님의 글에서 타자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나 계몽에 변증법에서 보이는 "언어적 폭력성" "자기한정성" 에 대한 복잡한 만연체적인 서술들... 딱 감이 오네요. 그런데 그런 독일어 번역투의 문장은 쓰지 마세요. 나중에 긁적님이 자신이 쓴 블로그의 논설문들을 읽고 아마 난독증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저도 대학교 다닐 때 아도르노를 위시한 독일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의 난해한 문투에 심취했던 적이 있지요.(물론 독일 철학자가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쓴 리포트 지금 제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릅니다. 지금 받아들이기 힘드실 겁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하지만 나중에 그런 그런 글투를 바꾸지 않으면 회사생활에서 만날 구박당하실 겁니다. 농담이 아니고.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10 10:55
慕華 // 자기한정성을 지적한 부분은 유사합니다만, 여전히 '진리를 선언하는 행위'라는 관점에서 변경이 옳지 않습니다. 변경한 내용들 세 가지가 모두 '상태'라는 관점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아마 원문의 내용을 명확하게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장규칙과 만연체를 언급한건 상당히 불쾌합니다. 제가 뭐 명 문필가도 아니고, 이 글 하나에 4-5번씩 퇴고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공적인 목적이 매우 약한 글이고, 내용의 난이도가 높은데 어떻게 완벽하게 할 수 있습니까.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상대방의 어법이나 억양의 잘못을 바로잡으면 절대 안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아드르노의 사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또한 제 생각의 기본개념은 '인식=폭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아드르노의 생각과 제 생각이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Commented by 慕華 at 2008/08/10 13:49
당연히 긁적님에게 저만으 문장작법을강요할 수는 없지요. 불쾌하신 것은 죄송한데, 긁적님의 문장쓰기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도르노보다는 푸코에 가깝겠군요. 선생님의 생각은.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10 23:31
慕華 // 동의하시지 않는 것을 제가 어찌할 수는 없지요. 취향을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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