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19일
'로마인 이야기'이야기 - 3. 에트루리아 왕들
로마 왕정의 두 번째 시기에는 에트루리아 계통의 왕들이 통치했습니다. 이 시기의 왕은 타르퀴니우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이렇게 세 명입니다. 타르퀴니우스는 원래 에트루리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 에트루리아의 관계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세르비우스와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에트루리아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르비우스는 타르퀴니우스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에서 에트루리아의 간접적인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타르퀴니우스의 손자라는 설이 있으므로 그 또한 에트루리아와 간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이 왕들은 에트루리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왕들이 로마에 이주해온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한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사료가 적어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사료를 중시하는 <로마사>에서는 아예 왕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로마 왕정의 사료는 부족합니다.
추정이기는 하지만, 에트루리아계 왕들은 상공업 종사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가 주도한 개혁들은 모두 로마에 사는 상공업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타르퀴니우스의 주요한 업적은 대하수도 즉 '클로이카 막시마(Cloaca Massima)'의 건설이며, 세르비우스의 주요한 업적은 로마의 세금제도 개혁입니다. 대규모 토목공사는 상공업의 활성화를 돕고, 세금제도 개혁은 상공업계층 종사자의 정치적 입지를 넓혔습니다. 이러한 상공업 우대정책으로 볼 때 이 왕들은 상공업 계층의 사람과 모종의 친분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주장에 따르면 대하수도는 로마의 일곱 언덕 사이의 습지를 개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습지를 개간하기 위해 하수도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에트루리아출신인 타르퀴니우스는 그 하수도의 용도와 역할에 대해 분명히 알았을 것이고, 언덕 사이의 습지를 보면서 하수도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사>에는 타르퀴니우스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수도를 건설했다고 하지만 크게 타당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수도를 통해 어떤 종류의 쓰레기를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수도의 건설은 로마의 인구 구성과 산업에 변화를 낳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타르퀴니우스 이전의 로마에는 그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행할 기술과 인력이 없었습니다. 기술과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라틴-사바니 왕조 시대에는 토목공사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저는 이를 간접적인 증거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하수도건설에는 에트루리아의 기술자와 상인이 많이 참여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유입이 사실이라면, 하수도 공사는 로마에 에트루리아 세력을 크게 확장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이 많이 유입되었고 로마정부는 그들에게 많은 돈을 지급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인이야기>의 주장에 따르면 하수도를 통해 개간된 언덕 사이의 습지에 공공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에트루리아출신 기술자와 상인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공공사업은 세르비우스 왕 때에도 계속 이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예로 '세르비우스 성벽'이 있습니다. 정말로 세르비우스가 이 성벽을 세웠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세르비우스가 정말로 성벽을 세웠다면, 그 역시 공공건물 건축에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르비우스 왕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군제 및 정치체제 개혁입니다. 세르비우스 이전의 로마 군제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로마인이야기>에서는 세르비우스가 처음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재산을 바탕으로 시민의 등급을 나누었다고 합니다.(1) <로마사>에서는 최초에는 토지를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었고 후대에 재산을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었다고 하나, 이 개혁을 실시한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개혁은 단순한 세금제도, 군사제도 개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로마는 각 계급의 시민이 부담해야 하는 병력 수에 따라 민회에 투표할 수 있는 표의 숫자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지 기준에서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제도를 바꾸게 되면 토지가 적으나 재산이 많던 사람들이 - 즉 상업, 공업 종사자 - 보다 많은 병력을 부담해야 하며, 민회에서 표를 보다 많이 얻게 됩니다. 결국 세르비우스의 개혁은 세금제도, 군사제도, 정치제도를 종합적으로 바꾼 것이며, 이는 상공업자의 정치참여를 보다 도왔을 것입니다. 다만, <로마인이야기>를 제외하면 민회의 투표방식에 대한 명확한 서술이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명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저는 다만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여러 역사책에 서술된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의 정책들은 모두 로마의 상업, 공업 계층의 사람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여러 역사책들의 서술이 일치하는 점을 감안할 때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는 상업과 공업계층의 사람들을 우대했을 것으로 강하게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감안할 때 <로마제국사>의 주장대로 로마 내부에 '상공업연맹체'와 '토지연맹체'라는 두 파벌이 생겼을 것으로 의심됩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마지막으로 로마의 왕정이 종식된 이유도 이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원로원과 민회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사람의 아들 혹은 그 자신이 '루크레테리아'라는 여인을 강간했다고 합니다. 그 범행이 널리 퍼지자 혁명이 일어나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왕위에서 쫓겨나고 로마 공화정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조금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인은 거의 200년간 왕의 통치를 받았고 대부분의 왕은 로마를 성공적으로 통치했습니다. 세습에 의한 왕정은 로마에 알맞은 통치체제입니다. 우연히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같은 좋지 못한 왕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왕정을 버릴 만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이 덕 있고 현명한 사람을 찾아 왕으로 세우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사>에서는 왕정의 몰락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군주정 하에서 로마인들은 융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라틴-사바니족으로 대표되는 토지연맹체와 에트루리아로 대표되는 상공업연맹체로 분열되어 있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낸 토지연맹체는 상공업연맹체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로마인이야기>에서도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의 몰락 이후 에트루리아인의 인구 유출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에트루리아인들에 대한 두 왕의 우대정책이 사실일 경우 이는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정치투쟁만으로는 로마 공화정의 탄생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투쟁에서 이긴 다음에는 그들의 뜻에 맞는 왕을 선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로마 사람들은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에서 문제를 찾지 않고 왕정이라는 정치 구조에서 문제를 찾았을까요? 지금까지 잘 운영되던 정치체제를 그들은 왜 무너뜨렸을까요? 아쉽게도 로마 왕정에 대한 사료가 지나치게 부족하여 좋은 추측을 해보기 어렵습니다.
(1) :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은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근거했습니다. 번역본이 없어서 영문판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_-v (조낸 빡셌어요 ㅠ.ㅠ...) 다만 세르비우스가 '최초로'인구조사를 했다는 구절은 찾지 못했습니다. 세금납부 기준 및 계급 별 병력 제공 숫자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가 제시한 도표는 리비우스의 '로마사'와 대부분 일치합니다. 그러나 리비우스는게 '1개 백인대가 1개의 표를 행사했다.'라고 명확하게 적지는 않았고, 투표방식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만 확인하고 있습니다.
PS : 사료가 너무 적어서 추측으로만 쓴 점을 사과드립니다. 이 시기에 관한 자료가 그만큼 적습니다. 이제 사료 많은 부분 나오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이 왕들은 에트루리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왕들이 로마에 이주해온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한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사료가 적어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사료를 중시하는 <로마사>에서는 아예 왕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로마 왕정의 사료는 부족합니다.
추정이기는 하지만, 에트루리아계 왕들은 상공업 종사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가 주도한 개혁들은 모두 로마에 사는 상공업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타르퀴니우스의 주요한 업적은 대하수도 즉 '클로이카 막시마(Cloaca Massima)'의 건설이며, 세르비우스의 주요한 업적은 로마의 세금제도 개혁입니다. 대규모 토목공사는 상공업의 활성화를 돕고, 세금제도 개혁은 상공업계층 종사자의 정치적 입지를 넓혔습니다. 이러한 상공업 우대정책으로 볼 때 이 왕들은 상공업 계층의 사람과 모종의 친분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주장에 따르면 대하수도는 로마의 일곱 언덕 사이의 습지를 개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습지를 개간하기 위해 하수도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에트루리아출신인 타르퀴니우스는 그 하수도의 용도와 역할에 대해 분명히 알았을 것이고, 언덕 사이의 습지를 보면서 하수도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사>에는 타르퀴니우스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수도를 건설했다고 하지만 크게 타당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수도를 통해 어떤 종류의 쓰레기를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수도의 건설은 로마의 인구 구성과 산업에 변화를 낳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타르퀴니우스 이전의 로마에는 그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행할 기술과 인력이 없었습니다. 기술과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라틴-사바니 왕조 시대에는 토목공사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저는 이를 간접적인 증거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하수도건설에는 에트루리아의 기술자와 상인이 많이 참여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유입이 사실이라면, 하수도 공사는 로마에 에트루리아 세력을 크게 확장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이 많이 유입되었고 로마정부는 그들에게 많은 돈을 지급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인이야기>의 주장에 따르면 하수도를 통해 개간된 언덕 사이의 습지에 공공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에트루리아출신 기술자와 상인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공공사업은 세르비우스 왕 때에도 계속 이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예로 '세르비우스 성벽'이 있습니다. 정말로 세르비우스가 이 성벽을 세웠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세르비우스가 정말로 성벽을 세웠다면, 그 역시 공공건물 건축에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르비우스 왕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군제 및 정치체제 개혁입니다. 세르비우스 이전의 로마 군제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로마인이야기>에서는 세르비우스가 처음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재산을 바탕으로 시민의 등급을 나누었다고 합니다.(1) <로마사>에서는 최초에는 토지를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었고 후대에 재산을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었다고 하나, 이 개혁을 실시한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개혁은 단순한 세금제도, 군사제도 개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로마는 각 계급의 시민이 부담해야 하는 병력 수에 따라 민회에 투표할 수 있는 표의 숫자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지 기준에서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제도를 바꾸게 되면 토지가 적으나 재산이 많던 사람들이 - 즉 상업, 공업 종사자 - 보다 많은 병력을 부담해야 하며, 민회에서 표를 보다 많이 얻게 됩니다. 결국 세르비우스의 개혁은 세금제도, 군사제도, 정치제도를 종합적으로 바꾼 것이며, 이는 상공업자의 정치참여를 보다 도왔을 것입니다. 다만, <로마인이야기>를 제외하면 민회의 투표방식에 대한 명확한 서술이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명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저는 다만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여러 역사책에 서술된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의 정책들은 모두 로마의 상업, 공업 계층의 사람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여러 역사책들의 서술이 일치하는 점을 감안할 때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는 상업과 공업계층의 사람들을 우대했을 것으로 강하게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감안할 때 <로마제국사>의 주장대로 로마 내부에 '상공업연맹체'와 '토지연맹체'라는 두 파벌이 생겼을 것으로 의심됩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마지막으로 로마의 왕정이 종식된 이유도 이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원로원과 민회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사람의 아들 혹은 그 자신이 '루크레테리아'라는 여인을 강간했다고 합니다. 그 범행이 널리 퍼지자 혁명이 일어나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왕위에서 쫓겨나고 로마 공화정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조금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인은 거의 200년간 왕의 통치를 받았고 대부분의 왕은 로마를 성공적으로 통치했습니다. 세습에 의한 왕정은 로마에 알맞은 통치체제입니다. 우연히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같은 좋지 못한 왕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왕정을 버릴 만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이 덕 있고 현명한 사람을 찾아 왕으로 세우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사>에서는 왕정의 몰락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군주정 하에서 로마인들은 융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라틴-사바니족으로 대표되는 토지연맹체와 에트루리아로 대표되는 상공업연맹체로 분열되어 있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낸 토지연맹체는 상공업연맹체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로마인이야기>에서도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의 몰락 이후 에트루리아인의 인구 유출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에트루리아인들에 대한 두 왕의 우대정책이 사실일 경우 이는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정치투쟁만으로는 로마 공화정의 탄생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투쟁에서 이긴 다음에는 그들의 뜻에 맞는 왕을 선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로마 사람들은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에서 문제를 찾지 않고 왕정이라는 정치 구조에서 문제를 찾았을까요? 지금까지 잘 운영되던 정치체제를 그들은 왜 무너뜨렸을까요? 아쉽게도 로마 왕정에 대한 사료가 지나치게 부족하여 좋은 추측을 해보기 어렵습니다.
(1) :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은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근거했습니다. 번역본이 없어서 영문판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_-v (조낸 빡셌어요 ㅠ.ㅠ...) 다만 세르비우스가 '최초로'인구조사를 했다는 구절은 찾지 못했습니다. 세금납부 기준 및 계급 별 병력 제공 숫자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가 제시한 도표는 리비우스의 '로마사'와 대부분 일치합니다. 그러나 리비우스는게 '1개 백인대가 1개의 표를 행사했다.'라고 명확하게 적지는 않았고, 투표방식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만 확인하고 있습니다.
PS : 사료가 너무 적어서 추측으로만 쓴 점을 사과드립니다. 이 시기에 관한 자료가 그만큼 적습니다. 이제 사료 많은 부분 나오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 by | 2007/09/19 21:24 | '로마인 이야기'이야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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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제 진짜 발동을 거는건가요? 초사이언 3 발동시작.
음. 생각해보니. '로마인이야기'땜시 꽤 잘 팔릴거 같기도 하네요.
'갈리아전기'도 5000부 이상 팔렸다는데. (사실, 겨우 5000부 라는게 웃기는거긴 하지만.;)
그나저나. 로마사 연구의 기본사료가 한글로 번역조차 안 되어있다는게 유감스럽습니다.;
준엽 // 원래 쪼렙이예욥. 뽈뽈뽈.;
이런 주문을 알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