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19일
실재론과 실재론적 태도 - 로보스씨와 J0hnLennon의 논쟁에 붙여
시작하기 전에 : 로보쓰띠 미안해요. ;ㅁ;... 지원사격이라고 말해놨는데 지원사격이 아닌거 같음 -_-; 좀 더 자세히 읽어보고 신중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크게 실수했음.;
이 글은 로보스씨의 블로그에서 일어난 논쟁에 대한 간략한 글이다. 로보스씨가 상대주의에 관한 글을 올렸고, J0hnLennon이라는 분이 트랙백을 걸어놓은 곳에서 논쟁이 시작한다.
로보스씨의 글 -> Why Relativism?
J0hnLennon의 글 -> 과학도 종교와 같은 믿음? - 과학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
나는 아쉽게도 이 두 글의 핵심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두 글의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J0hnLennon이 자신의 포스팅에 달아놓은 부제에 주목한다.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이라는 말에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오해'라는 단어는 옳음과 틀림을 전제로 하는 단어이다. 또한 '오해'라는 단어는 오해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 오해하지 않는 사람의 지적 수준보다 낮다는 의미를 갖는다. 웬만큼 강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오해'라는 말이 불쾌감을 자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 로보스씨의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로보스씨는 과학의 정밀성에 대해서는 매우 신뢰하지만, 과학이 진리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중국어를 모르지만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예시를 든다. 이 예시의 핵심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중국어를 잘하는 것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중국어를 몰라도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어떤 사람의 중국어 실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로보스씨는 이 결론을 과학에 적용한다. 즉, 로보스씨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과학적 현상에 대한 지식은 과학적 현상의 본질에 대한 지식과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은 단지 가설이요, 모형일 뿐 실제나 본질, 진리가 아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계몽주의를 경계한다. 계몽주의는 단지 모델에 근거한 이론들을 실제나 진리의 위치에 놓는다.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는 사람들이 단지 모델에 불과한 이론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우리 인류의 발전에도 해가 된다. 우리가 최선의 이론을 선택하려면 다양한 이론의 경합이 필수적인데, 계몽주의는 이론의 경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조금 넓은 범위에서 계몽주의는 다양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말하며, 단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다양성을 배제하는 계몽주의는 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유익하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 우매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외려 계몽이 철저하게 이루어졌을 때 최악의 파괴를 낳으며, 비판정신의 결여를 낳는다. 계몽을 통한 비판정신의 결여야 말로 대중을 우매하게 만드는 근원이다.
또한 내 입장에서 J0hnLennon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안하지만 중간에 접어두신 부분은 제외하겠습니다. 다만,“Why there almost certainly is no God"이라는 제목은 저에게 도킨스가 종교적이라는 생각을 주는군요. 닥치고 '모른다'라고 하는게 제일 정직할 겁니다. 니체형님조차 '모르겠다. 십라... 근데, 있으면 어쩔껀데?'라고 한데다가 어딜 감히 말장난을... -_-!)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과학법칙이 완벽하다고 생각은 편견 내지 기대감에 의존하고 있다. 과학 역시 믿음에 기반하나, 그 믿음은 완벽함을 상정하는 종교적 믿음과는 다르다. 과학이 완벽하다는 믿음은 과학이 완벽하지 않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조금 모순처럼 들리지만, 반례에 대한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진화론을 배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근거는 과학의 모든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만유인력은 질량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유인력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우리는 만유인력을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진화론의 부족한 점 때문에 진화론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 부분은 동영상에 대한 설명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상대주의 싫어하는 과학 빠돌이가 우리 로보스띠를 건드렸구낫!! 조지러 가자 -_-!' 이랬는데.; 살짝 당황했습니다. 최소한 과학에 국한한다면, 양쪽의 생각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J0hnLennon님이 로보스씨의 글에 반론을 건 이유가 로보스씨의 예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로보스씨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과학이 진리의 위치를 넘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보스씨는 이를 비판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로보스씨는 과학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J0hnLennon님과 로보스씨의 생각은 여기에서 일치합니다.
제 생각에 J0hnLennon님의 관점에서 로보스씨의 생각이 틀린게 아니라, 로보스씨가 서술한 과학자들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저로서는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지만, J0hnLennon님께서는 다음의 두 가지중 하나를 비판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과학을 진리로 생각하는 과학자들
2.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신념.
첫 번째의 경우에 대해 로보스씨와 J0hnLennon님의 생각은 일치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 대해 두 분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로보스씨는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 또는 원리 또는 결과물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며, J0hnLennon님은 '과학자들 역시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를 한거 같으니까, 두 번째 문제를 잠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과연 과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생각할까요? 혹은 그렇지 않을까요?
공부 지지리도 안하는 저로서는 사실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철학에는 '소박실재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소박실재론이란 실재론의 한 유형입니다. 내용은 대강 이러합니다. 자. 제 옆에는 지금 컵이 있습니다. 컵은 '실제로'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컵은 실재한다.'가 되지요.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마 로보쓰띠나 J0hnLennon님도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유? 없습니다. 어쨌건 골치 아픈거 좋아하는 이상한 회의주의 철학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컵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실재론자'입니다. 저로서는 소박실재론이 여기에서 '그러니까 사물은 실재한다.'까지 논지를 발전시키는지 잘 모릅니다만, 그들의 개략적인 근거는 이러합니다.
저는 과학자들 역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진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재하는 사물은 객관성을 전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회의론자가 '컵같은거 있는지 없는지 몰라!'라고 외쳐도 소박한 저의 마음은 '컵이 여기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회의론자가 뭐라고 지껄이건, 컵의 존재에 대한 저의 믿음은 변하지 않지요. 수백만명이 저에게 '컵은 없어.'라고 새도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조금 특이한 예로 정신분열증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종종 착각을 하며, 환상의 사물을 본다고 합니다. 가령 '으악. 다람쥐들이 내 몸을 물어뜯고있어!'라는 환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다람쥐같은거 없어!'라고 이야기해줘도, 정신분열증 환자는 다람쥐를 느낍니다. 최소한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 없이 존재합니다. 즉 다람쥐는 객관적 사물이지요.
객관적 사물에 대한 진술은 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반론이 잇을 수는 있겠지만 참이나 진리, 진실과 같은 단어들의 경계는 애매모호하기 마련이며, 그 단어들의 엄밀한 구분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외려 그 단어들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는 점에서 객관적 사물에 대한 참된 진술을 진리로 착각하는 현상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과학자들이 소박실재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물을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참과 진리, 진실에 대한 구분을 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그들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진리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을 갖습니다. 물론 그들은 엄밀히 말했을 때 과학과 진리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는걸 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급하는건 그들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이는 그들의 주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대하는 태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재론적 주장'과 '실재론적 태도'를 구분합니다. 이는 이성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이겨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실재론적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수십명의 사람들과 맞짱을 뜬, 매우 공포스러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들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독교인의 마음은 이토록 무섭습니다. 과학자들도 비이성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고, 그들 역시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실재론적 태도의 원인입니다.
도킨스 역시 이 비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신의 존재? 그건 '모르는'겁니다. '신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일 뿐입니다. '나는 이래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다르지요. 전자는 '객관적인'관점에서 확률적 주장을 하는데 반해, 후자는 주관적 관점에서 단지 자신의 생각을 나열합니다. 객관적인 관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는 전자의 의도를 볼 때, 저는 도킨스가 '실재론적 태도'를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일부러 ()까지 쳐가면서 도킨스를 깐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끝까지 말장난을 하고 싶다면, '신이 거의 존재할 것이라는..'이유를 제시하지요. 별거 아닙니다. 우주론적 증명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에 대한 관념을 짬뽕하고, 대굇수 이승일씨의 '왜 세계에는 에러가 나지 않는가?'를 첨가하면 됩니다. 이승일씨의 관점을 조금 부연하지요. 괴델의 증명으로 인해 익히 알려졌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모순성이 보장되지 않는데,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장되지 않은 무모순성이 보장되기에, 무모순성을 보장하는 신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세계에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킨스. 나랑 싸우자. 1주일만 공부하면 싸울 수 있다. ㅅㅂㄹㅁ)
그러나. 이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말들은 제 관점에서는 모두 핑계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너희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 더 많은 말들은 악에서 나오느니라.' 대강 이렇습니다.
이상입니다. 요약하면, 저는 과학자들이 머리로는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고 믿을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적 태도'는 과학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과학자들을 실재론자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PS : '로보스님'이라고 하는거보다 '로보스씨', '로보쓰띠'라고 부르는게 왠지 정감이 감 -_-; (불만있어도 할 수 없음. :P. ㅋㅋㅋ)
PS 2 : 퇴고는 눈물만. (....) 원래 10시 반에 자는게 목표인데. 지금 11시 10분. 샤워도 해야되요. orz.....
이 글은 로보스씨의 블로그에서 일어난 논쟁에 대한 간략한 글이다. 로보스씨가 상대주의에 관한 글을 올렸고, J0hnLennon이라는 분이 트랙백을 걸어놓은 곳에서 논쟁이 시작한다.
로보스씨의 글 -> Why Relativism?
J0hnLennon의 글 -> 과학도 종교와 같은 믿음? - 과학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
나는 아쉽게도 이 두 글의 핵심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두 글의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J0hnLennon이 자신의 포스팅에 달아놓은 부제에 주목한다.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이라는 말에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오해'라는 단어는 옳음과 틀림을 전제로 하는 단어이다. 또한 '오해'라는 단어는 오해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 오해하지 않는 사람의 지적 수준보다 낮다는 의미를 갖는다. 웬만큼 강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오해'라는 말이 불쾌감을 자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 로보스씨의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로보스씨는 과학의 정밀성에 대해서는 매우 신뢰하지만, 과학이 진리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중국어를 모르지만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예시를 든다. 이 예시의 핵심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중국어를 잘하는 것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중국어를 몰라도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어떤 사람의 중국어 실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로보스씨는 이 결론을 과학에 적용한다. 즉, 로보스씨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과학적 현상에 대한 지식은 과학적 현상의 본질에 대한 지식과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은 단지 가설이요, 모형일 뿐 실제나 본질, 진리가 아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계몽주의를 경계한다. 계몽주의는 단지 모델에 근거한 이론들을 실제나 진리의 위치에 놓는다.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는 사람들이 단지 모델에 불과한 이론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우리 인류의 발전에도 해가 된다. 우리가 최선의 이론을 선택하려면 다양한 이론의 경합이 필수적인데, 계몽주의는 이론의 경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조금 넓은 범위에서 계몽주의는 다양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말하며, 단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다양성을 배제하는 계몽주의는 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유익하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 우매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외려 계몽이 철저하게 이루어졌을 때 최악의 파괴를 낳으며, 비판정신의 결여를 낳는다. 계몽을 통한 비판정신의 결여야 말로 대중을 우매하게 만드는 근원이다.
또한 내 입장에서 J0hnLennon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안하지만 중간에 접어두신 부분은 제외하겠습니다. 다만,“Why there almost certainly is no God"이라는 제목은 저에게 도킨스가 종교적이라는 생각을 주는군요. 닥치고 '모른다'라고 하는게 제일 정직할 겁니다. 니체형님조차 '모르겠다. 십라... 근데, 있으면 어쩔껀데?'라고 한데다가 어딜 감히 말장난을... -_-!)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과학법칙이 완벽하다고 생각은 편견 내지 기대감에 의존하고 있다. 과학 역시 믿음에 기반하나, 그 믿음은 완벽함을 상정하는 종교적 믿음과는 다르다. 과학이 완벽하다는 믿음은 과학이 완벽하지 않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조금 모순처럼 들리지만, 반례에 대한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진화론을 배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근거는 과학의 모든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만유인력은 질량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유인력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우리는 만유인력을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진화론의 부족한 점 때문에 진화론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 부분은 동영상에 대한 설명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상대주의 싫어하는 과학 빠돌이가 우리 로보스띠를 건드렸구낫!! 조지러 가자 -_-!' 이랬는데.; 살짝 당황했습니다. 최소한 과학에 국한한다면, 양쪽의 생각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J0hnLennon님이 로보스씨의 글에 반론을 건 이유가 로보스씨의 예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로보스씨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과학이 진리의 위치를 넘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보스씨는 이를 비판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로보스씨는 과학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J0hnLennon님과 로보스씨의 생각은 여기에서 일치합니다.
제 생각에 J0hnLennon님의 관점에서 로보스씨의 생각이 틀린게 아니라, 로보스씨가 서술한 과학자들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저로서는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지만, J0hnLennon님께서는 다음의 두 가지중 하나를 비판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과학을 진리로 생각하는 과학자들
2.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신념.
첫 번째의 경우에 대해 로보스씨와 J0hnLennon님의 생각은 일치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 대해 두 분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로보스씨는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 또는 원리 또는 결과물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며, J0hnLennon님은 '과학자들 역시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를 한거 같으니까, 두 번째 문제를 잠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과연 과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생각할까요? 혹은 그렇지 않을까요?
공부 지지리도 안하는 저로서는 사실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철학에는 '소박실재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소박실재론이란 실재론의 한 유형입니다. 내용은 대강 이러합니다. 자. 제 옆에는 지금 컵이 있습니다. 컵은 '실제로'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컵은 실재한다.'가 되지요.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마 로보쓰띠나 J0hnLennon님도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유? 없습니다. 어쨌건 골치 아픈거 좋아하는 이상한 회의주의 철학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컵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실재론자'입니다. 저로서는 소박실재론이 여기에서 '그러니까 사물은 실재한다.'까지 논지를 발전시키는지 잘 모릅니다만, 그들의 개략적인 근거는 이러합니다.
저는 과학자들 역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진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재하는 사물은 객관성을 전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회의론자가 '컵같은거 있는지 없는지 몰라!'라고 외쳐도 소박한 저의 마음은 '컵이 여기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회의론자가 뭐라고 지껄이건, 컵의 존재에 대한 저의 믿음은 변하지 않지요. 수백만명이 저에게 '컵은 없어.'라고 새도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조금 특이한 예로 정신분열증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종종 착각을 하며, 환상의 사물을 본다고 합니다. 가령 '으악. 다람쥐들이 내 몸을 물어뜯고있어!'라는 환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다람쥐같은거 없어!'라고 이야기해줘도, 정신분열증 환자는 다람쥐를 느낍니다. 최소한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 없이 존재합니다. 즉 다람쥐는 객관적 사물이지요.
객관적 사물에 대한 진술은 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반론이 잇을 수는 있겠지만 참이나 진리, 진실과 같은 단어들의 경계는 애매모호하기 마련이며, 그 단어들의 엄밀한 구분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외려 그 단어들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는 점에서 객관적 사물에 대한 참된 진술을 진리로 착각하는 현상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과학자들이 소박실재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물을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참과 진리, 진실에 대한 구분을 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그들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진리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을 갖습니다. 물론 그들은 엄밀히 말했을 때 과학과 진리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는걸 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급하는건 그들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이는 그들의 주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대하는 태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재론적 주장'과 '실재론적 태도'를 구분합니다. 이는 이성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이겨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실재론적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수십명의 사람들과 맞짱을 뜬, 매우 공포스러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들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독교인의 마음은 이토록 무섭습니다. 과학자들도 비이성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고, 그들 역시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실재론적 태도의 원인입니다.
도킨스 역시 이 비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신의 존재? 그건 '모르는'겁니다. '신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일 뿐입니다. '나는 이래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다르지요. 전자는 '객관적인'관점에서 확률적 주장을 하는데 반해, 후자는 주관적 관점에서 단지 자신의 생각을 나열합니다. 객관적인 관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는 전자의 의도를 볼 때, 저는 도킨스가 '실재론적 태도'를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일부러 ()까지 쳐가면서 도킨스를 깐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끝까지 말장난을 하고 싶다면, '신이 거의 존재할 것이라는..'이유를 제시하지요. 별거 아닙니다. 우주론적 증명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에 대한 관념을 짬뽕하고, 대굇수 이승일씨의 '왜 세계에는 에러가 나지 않는가?'를 첨가하면 됩니다. 이승일씨의 관점을 조금 부연하지요. 괴델의 증명으로 인해 익히 알려졌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모순성이 보장되지 않는데,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장되지 않은 무모순성이 보장되기에, 무모순성을 보장하는 신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세계에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킨스. 나랑 싸우자. 1주일만 공부하면 싸울 수 있다. ㅅㅂㄹㅁ)
그러나. 이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말들은 제 관점에서는 모두 핑계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너희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 더 많은 말들은 악에서 나오느니라.' 대강 이렇습니다.
이상입니다. 요약하면, 저는 과학자들이 머리로는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고 믿을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적 태도'는 과학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과학자들을 실재론자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PS : '로보스님'이라고 하는거보다 '로보스씨', '로보쓰띠'라고 부르는게 왠지 정감이 감 -_-; (불만있어도 할 수 없음. :P. ㅋㅋㅋ)
PS 2 : 퇴고는 눈물만. (....) 원래 10시 반에 자는게 목표인데. 지금 11시 10분. 샤워도 해야되요. orz.....
# by | 2007/09/19 23:25 | Miserere Nobis | 트랙백(1)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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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이 거의 존재할 거라는" 논증.
일전에 "싸우자!" 덕분에 많은 괴수님들께서 여러 의견을 내주셨는데, 그 중 긁적님께서 "실재론과 실재론적 태도 - 로보스씨와 J0hnLennon의 논쟁에 붙여"라는 제목의 좋은 글을 써주셨다. 아아, 그래서 다시 싸우자는 건 아니고, 그 글에서 재미있는 논증을 하나 보았기에 잠깐 그에 대해 논해보려고 한다. 만일 끝까지 말장난을 하고 싶다면, '신이 거의 존재할 것이라는..'이유를 제시하지요. 별거 아닙니다. 우주론적 증명하고 아우구스티......more
그래서 저는 진리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를 가진 것이라기보단 (실제로는 있기 힘든)완벽함이라던지, (모두에게 영원히 작용하는) 절대성에 대한 상징, 추구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은 진리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진리를(추구하는 자들을) 위한 강력한 도구 중 하나임은 분명한거 같은데요.
Quency // 쩝.; 사실 제 최종 입장은 이겁니다. -> 진리? 그거 먹는건가요? 우적우적.
인간의 인식능력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친구중 한명은 '인식능력의 무한한 확장'을 언급하면서 '진리에 무한히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하는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군요.
다만 진리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도, '진리'라는 개념이 갖는 효율적인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진리처럼 사용할 수 있는 대체물을 인식내에서 찾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 대체물은 감각에 기반하며, 과학은 감각에 기반하기 때문에 진리랑 비스무리하게 돌아가지요.
그래서 과학이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거라 생각합니다. -_-;;
먼저 변변찮은 제 블로그에 트랙백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논쟁이라는 것이, 상대방과 의견에 아무리 공통점이 많다하더라도,
아주 조그마한 차이점이 단지 하나라도 있으면
종종(?) 발생하게 되는 것인 만큼,
로보스님과 저의 경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 때문에 님도, 로보스님 이글루에서 저를 적군(?)으로 보시고
지원사격에 들어가려고 하셨을거구요...
아무튼, 저에 대한 오해를 조금은 거두신 것 같이 느껴져서,
그렇게 해주신 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다음으로 트랙백 해주신 님의 글에 대한
제 짧은 생각들을 남겨 보자면요...
1.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저도 제 블로그 글의 부제가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이는군요...
그 점을 고려해서, 저 나름대로는,
그 일반인에 저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말을 아래에 추가했었는데,
역시나 그걸로는 불충분했다고 보이는군요...
사실 그 당시에, 부제에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로,
오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가 않아서
(역시나 어휘력이 딸려서...;;;)
일단 포스팅은 그렇게 했는데요,
그 단어가, 님이나 로보스님께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과 드리고 싶네요...
지금은, 차라리 다른 부제를 생각해볼걸 하는 후회가 드는데...
이미 그렇게 없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부분은 죄송할 따름입니다...
2. 제가 저 글을 로보스님 글에 트랙백을 건 것은,
로보스님의 글에서, ‘과학도 결국엔 종교와 같은 믿음일뿐이지’라는 생각을
엿볼수가 있어서 트랙백을 건 것이구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로보스님 블로그에서도
제가 반복해서 설명을 한 적이 있으니, 여기서 또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3. 그 점에 있어서, 님은
과학자들이, 머리로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주장을 진리로 믿고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솔직히 저는
‘머리로’ 자신의 주장을 진리로 믿고 있는다라는 것과
‘마음속으로’ 자신의 주장을 진리로 믿고 있는다라는 것 사이에
어떠한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후자가 ‘마음 속으로’ 자신의 주장이 진리였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것’이라면
차이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박실재론을 고려하더라도,
마음과 머리로 믿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지 하네요...
그리고 설령, 과학자들이 ‘마음속으로’ 자신의 주장을 진리로 믿고 있는다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이 언제든 반박당할 가능성까지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그것은 종교에서의 믿음(반박당할 사소한 가능성조차 전제하지 않는)과는
똑같을 수가 없을 겁니다.
4. 그리고, 일단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가 없다면, 어떤 것에 대해,
그것이 진리이다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겁니다...
따라서, 과학이 진리이다 아니다, 또는 종교가 진리이다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괜히 하게 되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니까요...
제가 제 블로그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종교와 과학의 진리여부나, 그것의 참 거짓에 대한 것이 아닌,
(진리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밝히고자 하는
양자의 방법론적 측면에 대한 것이었구요...
하지만, 그렇게 양자에 방법론적인 차이점이 있다 하더라도,
과학과 종교 둘 다 참 일수도 있는 것이고,
어느 한쪽은 참, 어느 한쪽은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둘 다 모두 거짓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양자에 방법론적인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가능성들을 모두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요...
5.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님 말씀처럼 닥치고 모르는게 정답일겁니다.
그런데 무신론에선, 신의 존재에 대해 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자막을 넣어서 올린 영상(http://j0hnlennon.egloos.com/591443)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무신론에서는
어떤 것의 존재의 유무에 대해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단지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신의 유무에 대해 100% 알고 확신하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구요...
그렇기에, certainly란 말 앞에 ‘almost’ 단어를 추가한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어떤 것이 없다는 것의 증거로서,
그것이 없다는것 이외에 어떤 완벽한 증거가 있을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님처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그것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로 인하여 정당화된다면,
신 외에도, 그것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그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우리가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덧붙여, 무신론에서 없다고 이야기하는 신에 대해서
님이 혹시 오해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그 부분에 대해 제 블로그에서 예전에,
윈드러너님에게 답글로 적은 이야기를
아래에 복사해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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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여기서 또, 무신론에 대해,
‘무신론에선 그 모든 신이 없다고 한다.’와 같은
또 다른 오해를 가지고 계실까봐
노파심에서 그것에 대해서 추가로 적는 겁니다만,
그렇게 무신론에서 신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에서 없다고 이야기하는 신에,
수많은 철학이나 지구 60억의 사람들이 제각기 생각하는
그 모든 신이 포함되는건 아닙니다.
만들어진 신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도킨스씨가 그의 책에서 없다고 증명하고자 하는,
그리고 무신론에서 없다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신은,
그 중에서도, 어떠한 특정한 속성을 지닌 신입니다.
그 속성은 간단히 말하자면, ‘초자연’(supernatural)적인 ‘인격’(personal)신이지요.
(사실 인격신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지요... 야훼와 같은 인격(?)신을 믿는 신앙에 따르면, 실제로는 우리 인간이 그 신으로부터 그의 어떤 ‘격’을 받은 것인데, 거꾸로 우리가 신에게 인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으니 말이죠... 따라서 인격신이라는 표현은, 편의상 (우리 인간을 가리켜, 신격인간란 표현을 쓰는건 좀 이상하잖아요?? ㅎ) 그렇게 쓰는 것으로 하지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아닌데... 암튼... 핵심은, 무신론에서 없다고 이야기하는 신이란, 이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그의 어떠한 격을 부여했다는 그와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이지요...)
사실 세상 사람들은, 신이라는 단어를 참으로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대우주 그 자체를 신으로 여기기도 하구요,
또 어떤 이는 자연에 존재하는 법칙 그 자체를 신으로 여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무신론에서 없다고 하는 신에는,
그와 같은 신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신론에서 없다고 여기는 신에는, 단지(?) 많은 종교에서 믿어지고 있는
인격적 속성을 지닌 신만(?)이 그 대상일 뿐이지요.
이 점을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고 계시던데,
참고 되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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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런 논쟁(?)을 떠나서
오늘부터 추석연휴인데
모쪼록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J0hnLennon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그간 반응이 없어 우울했었음. 소심소심 -_-;;; )
일단 처음에는 적군(?)으로 보고 들어갔습니다.
즉, J0hnLennon님께서 과학적 실재론을 주장하시는걸로 알았지요.
그러나 포스팅하신 글은 최소한 실재론쪽의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부제의 적절치 못한 측면은.... '일반인'에서 초점을 맞추지 말고
'과학자들의 생각'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조금 일반화하면, 올바르지 못한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생각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요.
이 경우 부제는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 정도가 되겠군요.
로보스띠가 이 부제에 대해 불쾌해하셨는지 그렇지 않은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추측할 뿐입니다. ^^;
2. 그 측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흠.;
다만 제 입장에서 로보스씨는'과학이 진리라는 생각은 종교적 믿음과 같다.' 라고
쓰신 듯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주장이 J0hnLennon님 입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그렇지만 로보스씨는 완벽함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과학과 종교의 비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듯 합니다.
3. 행동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멀리 갈 것 없이 도킨스의 예만 보아도 됩니다.
'왜 신은 거의 있을 가능성이 없는가?'
....포스팅에서도 밝혔듯이, 이건 말장난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철학의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은 모두 '나는 신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도킨스는 '모른다'라고 하지 않고 '거의 없지 않을까?'라고 했는데,
이는 기독교인을 까고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추측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신의 존재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없다.'는 사실과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까고싶은 마음'의 차이가 빚어낸
도킨스의 '행동'이 아닐까요?
4. 저는 개인적 측면에서는 실재론에 찬성하지만,
집단이나 관계, 의사소통의 측면에서는 상대론에 찬성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 *-_-*)
다만 저는 참과 거짓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참과 거짓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의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게 되고, 그럼 무한소급 ㄱㄱ씽 하게 되겠지요.;
글쎄요. 더 이상의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개략적인 생각은 있지만, 제 표현능력이 못미치는군요.;
5. 이것도 '까고싶어하는'마음이 빚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는 없다고 치지요.
그렇다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신이 없다고 믿을 수도 없지요.
동일한 논거로 무신론도 격파됩니다.
그러므로 '왜 신이 거의 있을 가능성이 없는가?'라는 질문이 과학적이라면,
'왜 신이 거의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가?'라는 질문도 과학적입니다.
(도킨스. 나랑 한 판 하자니까. ㅅㅂㄹㅁ)
그러나 제 관점에서는 과학이건 뭐건. 양 질문은 모두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건 사실의 일종도 아니며, 과학의 일종도 아닙니다.
저는 이런 주장들을 '욕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합리적 논거에 의해 유신론을 주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도는 비합리적인 논거에 이루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건 말건, 그건 인간의 자유입니다.
만일 합리적 논거에 의해 전도가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추론능력이 부족하거나 인식능력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겠지요.
무신론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논거는 비합리적이며, 무신론자가 되건 말건 그건 각 개인의 자유입니다.
마찬가지로 합리적 논거에 의해 전도가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추론능력이 부족하거나 인식능력이 부족한 사람일 뿐입니다.
요점은. '모른다'에서 더 나아가지 말라는겁니다. 신에 대해 다른사람을 설득하고자 하는 노력은 모두 비합리적이며, 다른 주장의 비합리성을 공격하는 행위는 제 관점에서는 '부도덕'합니다.
(그래서 도킨스 ㅅㅂㄹㅁ 가 가능한거임. 안그러면 그냥 '도킨스씨, 틀렸습니다.'정도로 끝남.)
또한, 신과 같은건 아무도 모릅니다. 누군가 KOD를 믿는다고 해도 전 아무말 안할겁니다.
신 KOD는 다음과 같은 신입니다.
1. 조낸 힘 쎔
2. 신 God를 믿는 사람을 모두 지옥에 넣음.
3. 나머지는 모두 천국에 넣음
-_-;
초자연적 인격신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른다'에서 더 나아가면,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휴.; 길었네요. ^^;
J0hnLennon님도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
뭐... 잘 모르기도 한데... 알아서 뭐할건지. 그걸 묻고 싶습니다.
아마 진리를 알게 되면 새로운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하나 더 나오겠지요. 뭐. -_-;
윈드러너님까지 여기 출동하셨군요 +_+ 반갑습니다 ㅎㅎㅎ
긁적님의 지적이 상당히 옳습니다요. 저는 J0hnLennon님의 부제에 발끈해서 -_- 저 글을 쓴 거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J0hnLennon님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글을 쓴 셈이니까요. (왜 작은따옴표로 묶어 강조했냐면, 저 자신은 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P)
긁적님이 정리하셨듯이, 결국 진리 그거 먹는건가요 우적우적... 이 답이겠죠 -ㅅ- 아마 이 토론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은 다 '객관적 진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하는데, 제 글에 달린 답글에서 윈드러너님이 말씀하셨듯이 과학자들이 이성을 '객관적 진리'에 올려놓았다는 점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근데 이건 긁적님 말씀대로, 객관적 진리가 아님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네요.
J0hnLennon님은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네 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머리와 가슴이 뚜렷이 나뉠리가 없거든요. 따라서 과학자들의 연구에도 고정관념이나 자신의 소망이 개입되겠죠. J0hnLennon님은 "그리고 설령, 과학자들이 ‘마음속으로’ 자신의 주장을 진리로 믿고 있는다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이 언제든 반박당할 가능성까지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그것은 종교에서의 믿음(반박당할 사소한 가능성조차 전제하지 않는)과는 똑같을 수가 없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바람은 마음속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과학연구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실험 데이터를 '해석'합니다. 헌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기성이론이나 자신의 고정관념들이 개입될 수 밖에 없죠.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해석'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과학사회학자들이 들고 나왔던 대표적인 예로 밀리컨 기름방울 실험이 있습니다. 밀리컨의 실험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밀리컨은 자신의 데이터 중 결과를 잘 보여주는 데이터들만 쏙쏙 뽑아서 발표했다고 하죠. 이와 같이 과학자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실험결과를 변형시키는 예는 굴드의 책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도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이런 모습들을 볼 때, 자유의지론과 예정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J0hnLennon님은 과학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자신의 오류가 지적되면 곧장 그 지적을 받아들여 수정하는 것처럼(종교인들과는 달리!) 묘사하셨는데, 저는 그 묘사에 회의적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과학 분야들(뭐 대표적으로 우주론이라든지 post-표준모형 등이 있겠죠)이 있는데, 과학자가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즉시 그걸 수정한다면 논란이 벌어질 이유가 없죠. 심지어 자기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이론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숨은 변수 이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 아 또 길다...
최소한 이 부분만은 니체형님하고 같습니다. '신따위 있건말건 뭔소용이야! ㅅㅂㄹㅁ'<- 요기서 '신'을 '진리'로 고치면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쩝. 사실 '과학자들의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로보스띠와 J0hnLennon님의 글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J0hnLennon 님께서 반론을 건 부분은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이 진리라고 생각한다.'에 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부분에서는 양쪽이 유사한 주장을 하는것 같네요. (잘못읽은건가.; 덜덜덜)
뭐. 여튼. 제가 보기에 '소박실재론'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모두 관용하면서 살아요 :)
저 자신 도킨스의 저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 발언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워집니다만,(혹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 도킨스의 '신은 존재할 확률은 거의 없다'는 주장은 일정 부분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밀한 기관 등을 갖추고 있는 생물들이 점진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 발생할 극미한 확률보다 그것들의 창조주(디자이너?)가 한 순간에 자연발생할 확률이 훨씬 낫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제외하고서라도] 이 부분은 과학보다는 인문학적 연구 성과에 의존한 주장 같습니다만, 현대인은 몇몇 신들을 제외하고는 고대인들이 진심으로 섬겼던 신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호소인 듯합니다. 그러한 경향의 원인은 모태 신앙으로 그러한 소수자의 종교를 얻는 경우가 갈수록 적다는 점과 경전이 사실에 근거해서 저술되지 않고 끊임없이 조작되었다는 주장 때문이겠죠.
사실 지적설계론에 대한 이 재미있는 논쟁은, "성경의 테트라그라마톤(여호와?) = 지적 설계자"라는 도식 때문에 상당 부분 혼란을 빚고 있는 듯합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지상의 모든 경전을 무력화하는 데에까지밖에 힘이 미치지 못하니까요. (사실 그러한 연구 성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의할 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무신론자가 인간의 학문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성과'의 최대치는 기껏해야 "성경을 위시한 모든 경전은 신과의 접촉을 거쳐서 쓰인 것이 아니라, 날조된 것이다" 정도가 될 겁니다. 도킨스 (그리고 저와 같은) 등의 무신론자가 직면한 문제는 이 부분입니다. 모든 경전이 사기라고 가정한다 해도, 그 경전들이 주장하는 신의 모습과 별개로 어떤 디자이너는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 그러나 그 디자이너와는 접촉할 수도 없고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직접적으로 얻어낼 수 없다는 점 등이겠죠.
그런 까닭에서 저는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라고 생각합니다만,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 믿음을 갖는 종교인으로서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생각합니다.
음.. 적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죄송하네요..;; 앞으로는 트랙백 등을 사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인간족의 인식능력이 제한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게는 지금 제 눈앞의 노트북, 크게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지요. 이 경우 우리는 '컵이 존재한다.'는 명제와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의 참/거짓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 두 명제의 참/거짓이 적용되는 번위는 인간의 인식능력 바깥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라는 명제들은 그 적용범위가 한 사람으로 제한됩니다. 이 명제들의 적옹범위는 인간의 인식능력 안쪽에 있으므로, '나'는 이러한 명제의 참/거짓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뭐. 이와 유사한 원리로. 저는 불가지론자입니다만 하나님을 믿습니다. :)
교회가서 이따구 이야기했다간 등에 칼 맞지요 -_-; 더럽게 슬픈 현실입니다.
결론적으로... 방문 감사합니다. ^^
엄밀히 말해 그런 의미에서의 불가지론을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지금 노트북 컴퓨터나 마우스, 책, 컵과 같은 사물들을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필연적으로 그 사물들이 '실재한다'는 증거가 되는가? - 하고 자문하는 것은 사실상 과학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또한 최종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히 최종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우리는 모든 과학적 사고를 할 적에 적어도 그 사고의 과정 내에서는 우리의 지각과 이성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과학적 사고 과정은 나름대로 체계적인 논리적 관계로 구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과학적 사고 전체를 지지하고 있는 지각 능력과 이성이라는 두 축이 불완전하다는 점은 불가피하게도 그 사고 과정과 별개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두 축의 불완전함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완전한 도구를 통해 과학적 사고를 해야 하니까요.
제가 불가지론을 이야기한 것은 인간의 지각 능력과 이성의 불완전성과 별개로, '신'이라는 존재가 애초에 '컵'과는 달리 지각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인간이 컵을 지각한다는 사실로부터 필연적으로 컵이 실재한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즉, 인간의 지각이 완벽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애초에 신은 그 지각 가능한 범위 밖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지각 능력을 신뢰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신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컵'과 '신'이라는 상당히 극단적인 두 케이스에 대해 논하고 계신데요, 그렇다면 우리의 오감으로 지각할 수 없지만 과학에서 다루는 존재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일례를 들어 '원자'라는 존재를 봅시다. '원자' 역시 인간이 직접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이를 근거로 원자가 실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내세워도 되겠습니까? 좀 더 추상적인 예를 들어서 '물리법칙'이라는 대상은 어떻습니까? '물리법칙' 역시 직접 지각되지 않는 대상인데요. 게다가 '물리법칙'은 항상 귀납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지각 능력을 신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물리법칙' 자체가 실존하는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덧붙여 10/11 00:37에 다신 답글에서 여호와가 아니더라도 지적 설계자는 존재할 수 있다- 는 주장을 하셨는데, WizardKing님의 말씀대로 "그 디자이너와는 접촉할 수도 없고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직접적으로 얻어낼 수 없다"면 굳이 그런 대상을 과학에 도입해야 할 필요를 못 느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원자의 개념을 비롯해 과학에서 상정하고 있는 일체의 모델과 그것들에 관한 이론들은 잠정적 진리에 해당합니다. 아직까지 원자나 이온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들 이론을 잠정적인 진리로 인정하는 것은 그 가설들이 여러 가지 실험들 내에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현재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잘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혹 새로운 실험이 나타난다면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이 잠정적 진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메스를 들이대겠지요. 아인슈타인이 나무에서 떨어진 사건은 이미 과학사 내에서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이에 자극 받은 포퍼의 반증가능성 이론에 대해 굳이 달리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지각할 수 없는 대상 및 지각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질서를 가정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이성입니다만, 그 이성의 불완전성 때문에 물리 법칙 자체에 대해 불가지론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지요.
요약하자면, 과학은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범위(위의 경우 미세한 세계)의 원칙에 대해서도 가상의 모델을 상정하고, 가설을 세우며,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이를 잠정적 진리로 인정합니다. 그 잠정적 진리는 여러 가지 증거에 의해 수정되며, 더욱 더 '진리'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한편, "이 세상은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를 나오신 어떤 천재 디자이너의 작품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의 가설로 성립하는 경우는 문제가 조금 다릅니다. 이는 원자나 이온의 존재, 기체 반응의 법칙 등을 잠정적 진리로 상정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 잠정적 진리들이 여러 실험들을 통해 잠정적으로 증명되었고, 또 현실에 대한 해석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신뢰를 얻고 있는 반면, 신의 문제에는 원자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 이상의 논리적 비약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은 지적인 설계자 신에 의해 창조되었을 것이다." 라는 가설은 결정적으로 엄청난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가설을 지지할만한 실험 결과나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가설 설정 단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먼저 엄청난 모호성의 문제입니다. 이는 지적 설계론이 근본적으로 인간 종교사의 연장선상에서 대두되었다는 특성에 기인합니다. 대체 그 '지적 설계론자'라는 분에 대한 정의 자체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원자나 이온이 불성실하다거나, 유순하다거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 반면, 지적 설계론자에 대해선 혹인은 그것이 절대선이 스스로 현현한 형태라고도 하고, 아니면 단지 하나의 메커니즘이나 질서를 구현하는 몰가치적인 존재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자가 반드시 완전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고도 합니다. 애초에 그 '신'에 대한 개념의 모호성이 논리적, 과학적 논증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대개는 완전한 디자이너의 존재를 상정하는 쪽으로 가는 듯합니다만, 지적 설계론자들의 근거라는 것이 그 지적 설계론자의 속성을 완전자의 속성으로 치환할만큼의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이 가설의 정립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학자가 모델을 상정하고, 그 모델들의 관계를 상정하여 만든 가설은 실험에 의해 증명 및 반증되는 반면, 신에 대한 가설은 애초에 그런 논증이 매우 어렵습니다. 예컨대, 고대인들은 천둥 번개를 보고 그 자연 현상의 원인을 신으로 상정하였습니다만, 포이어바흐의 지적대로 이는 단순히 현상에 대한 의인화이자 투사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나친 논리적 비약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지적설계론을 그 아버지격인 창조론과 관련해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적설계론자를 인격적 존재로 상정하며, 그 과정에서 신의 존재를 뒷받침하기 위한 무관한 근거들이 무수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프레이저의 말대로 이는 인간의 관념 내 질서를 자연 현상 내의 질서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적설계론에 대한 근거와 그 이론의 증명 사이의 거리는, 원자에 대한 실험과 원자라는 가정된 존재 사이의 거리에 비해 지나치게 떨어져 있습니다.
1. 상정 대상의 몰가치성 (곧 그 대상을 명확하게 특징 지우게 될)
2. 실험을 통한 잠정적 증명 및 반증의 가능성
3. 실험 등의 근거를 통한 가설의 잠정적 인정의 허용성
의 측면에서 신에 대한 가설보다 더욱 과학적입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어느 정도 일상적인 의미에 기반한 설득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설혹 누군가 "근거와 결론 도출 사이의 거리를 따질 때, 원자의 경우 그것이 가깝고 신의 경우 그것이 상대적으로 멀다 해도 결국 양자 모두 필연성을 내포하지는 않잖소?" 하고 묻는다면 사실 그 부분은 약간 극단론이라고밖에 저로서는 답할 수 없겠습니다.
그나저나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합니다 ........ ;ㅁ; 앞으로는 정말 트랙백 걸게요;;; 쓰다보니.....
WizardKing // 더헛. (........)
로보스, WizardKing // 쩝. '신'은 감각지각이 안되고 '컵'은 감각지각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컵'을 알되 '신'을 모른다는 지적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신이나 지적 설계자에 대해 더 이상의 논쟁을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WizardKing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신'이나 '지적설계자'에 대한 감각적 지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논쟁을 통해 신에 대한 사실 또는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의견에 도달할 수 업습니다. 물리법칙의 실재성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물리법칙의 실재여부를 판단할 수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런종류의 논쟁은 생산력의 발달에 도움되는바가 없습니다. 신이나 물리법칙이 존재한다고 해서 쌀의 생산량이 5%는다거나 수출액이 5%는다거나 하지 않지요. 아마도 여러가지 상황이나 개인의과 집단의 권리가 갖는 한계를 고려할 줄 아는 사람이 많다면 생산력의 향상이 이루어지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균형잡힌 정신은 아마도 여러가지 현상들을 심사숙고하는 과정에서 길러질 것입니다.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저는 이러한 결론을 낼 수 없는 종류의 논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마 '놀이'라는 관점에서 논쟁을 수긍할 수 있겠지만, 글쎄요.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많이 띄는군요 ^^;
로보스 // 뭐. 그렇지요.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굳이 논쟁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_-a
나중에 재미있는거 생기면 놀아보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