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이야기 - 8. 제2차 포에니전쟁 초기-칸나에 이전

        1차 포에니전쟁이 끝난 후 하스드루발 가문은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했습니다. 로마는 그들의 세력팽창을 견제하고 동맹도시 '마르세유'를 보호하기 위해 협약을 맺습니다. 이에 따라 하스드루발 가문은 에브로강 이북으로 자신의 세력을 넓힐 수 없었지만, 반대로 에브로강 이남의 이베리아반도에 대한 통치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이 하스드루발 가문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애매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군토라는 도시는 '로마연합'에 가입해 있었지만, 에브로강 남쪽에 있었습니다. 한니발은 협약에 따라 사군토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로마연합'의 일원이 된 도시가 공격받도록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한니발이 사군토를 공격하자, 로마는 사군토의 공격을 중지시키기 위해 한니발과 카르타고 정부에 외교 사절을 파견합니다. 양측이 모두 로마의 제안을 거부하자 로마는 카르타고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한니발은 왜 굳이 사군토를 공격했으며, 왜 사군토를 점령하는데 8개월이나 걸렸을까요. 사군토는 작은 도시입니다. 한니발이 로마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까지 점령할 가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군토는 평야에 위치했기 때문에 방어에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지역에 위치한 도시를 위대하신 니발형님께서 8개월동안 점령하지 못하셨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그때로부터 강산이 25번이나 바뀔 정도의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이런 지역이 방어에 유리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사군토의 위성사진(구글어스) 고대에는 해안도시였을 가능성이 있음>

        첫 번째 질문은 비교적 쉽게 풀립니다. 한니발은 로마와의 전쟁을 원했고, 로마의 선전포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군토를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니발은 직접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로마의 선전포고를 이끌어 내었을까요? <로마제국사>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간단한 해답을 제공합니다. '한니발은 아홉 살 이후 한 번도 고국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카르타고의 동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조국의 전쟁승인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전쟁을 선포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먼저 시작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로마가 전쟁을 선포하자, 한니발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기본계획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당장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중부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침입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와 전쟁중이던 주변의 갈리아인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로마는 한니발이 수만 명의 병력과 수십 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눈덮인 알프스를 넘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에 그의 움직임을 뒤늦게야 파악하고 대책마련에 고심하게 됩니다.
        한니발은 로마가 강한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한니발은 '로마연합'의 붕괴를 노렸습니다. 그는 이탈리아반도 안에서 전투를 벌여 크게 이긴 후, 근처의 도시들을 회유하려고 계획했습니다. <로마사>에서는 이 전략의 또다른 이점을 언급합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는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여러 개의 전선을 동시에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니발의 보급처는 사실상 에스파니아 한 곳 이었고, 믿을 만한 부대도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뿐이었다. 이에 한니발은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고자 했고,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로마는 이러한 한니발의 기본전략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주무대가 에스파니아 혹은 남부 갈리아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마르세유에 병력을 보냅니다. 마르세유의 지리적 위치와 항구도시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좋은 전략입니다. 로마는 제해권을 완전히 쥐고 있었기 때문에 이베리아반도의 모든 해안지방에 대해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한니발의 근거지인 '카르타헤나'가 항구도시인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상당히 강한 이점입니다.(1) 또한 당시의 상식으로 이베리아반도에서 이탈리아반도로 오는 육로는 오직 남부 갈리아를 통과하는것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길목에 위치한 마르세이유를 근거로 전쟁을 벌이면 공격과 수비의 양 측면에서 모두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이 매우 은밀하고 신속하게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했기 때문에 로마는 기본전략을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마르세유에 파견된 로마 집정관인 코르넬리우스는 한니발에 대한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이베리아반도로 보내고, 자기 자신은 수뇌부를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에서 한니발을 방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먼치킨입니다. 방어가 될 턱이 없지요. 코르넬리우스는 티치노에서 기병전을 벌여 누미디아 기병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다른 집정관 셈프로니우스는 트레비아에서 한니발과 회전을 벌여 한니발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니발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두 집정관은 병력의 70%를 잃었습니다.
        로마는 한니발의 남하를 저지해야 했지만, 한니발을 어디에서 저지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한니발이 아펜니노 산맥을 넘은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은 '플라미니아 가도'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알프스도 넘은 사람이 꼭 편한 길을 택한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로마는 한니발이 플라미니아 가도를 사용할 경우와 아펜니노 산맥을 직접 넘는 경우를 모두 상정해서 병력을 양쪽에 나누어 배치했습니다. 그들은 한니발의 움직임이 파악되면 곧장 병력을 합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니발은 아펜니노산맥을 곧장 넘었습니다. 플라미니아가도 근처에 사는 움브리아족의 수는 2만명정도였고, 아펜니노산맥 바로 건너편에 사는 에트루리아족의 수는 5만명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연합'을 해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에트루리아족을 끌어들이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에트루리아지방의 로마군은 혼자서 한니발을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한니발을 그냥 보내주고, 아군과 합류할 때까지 한니발을 추격했습니다. 한니발은 뒤따라오는 적을 트라시메노 호숫가에서 안개를 이용한 매복 작전으로 섬멸합니다. 매복에 걸린 로마군은 전멸했습니다.
        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로마는 '파비우스'를 독재관으로 옹립합니다. 파비우스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작전을 세웁니다. 그는 절대로 한니발과 전투를 벌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대신 한니발의 보급로를 최대한 끊고, 한니발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전은 한니발의 약탈행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로마의 동맹국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여기에 파비우스가 속임수에 넘어들어가 한니발의 추가적인 남진을 허용하자, 원로원은 파비우스를 독재관직에서 해임합니다.
        이처럼 한니발은 모든 대규모 전투에서 손실 없이 이겼고 보급로를 차단하려는 파비우스의 시도 막아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로마 연합을 해체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니발에게 항복한 도시는 하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도시들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력으로 도시를 점령하고 나면 그 도시를 지킬 병력을 배치해야 했는데, 병력충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병력을 분산배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를 정면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고, 정면승부를 할 때마다 적을 처참하게 발라버리는 그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게 됩니다.


(1) 무탈이 돌아다닐 때 마린메딕이 기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과 같음

by 긁적 | 2007/11/14 22:54 | '로마인 이야기'이야기 |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smallhuman.egloos.com/tb/99857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